'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 가랑비메이커 단상집2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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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곳에 점. 박고 서 있대서

당신과 나는 같은 여정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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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깨어 있다는 것만으로

잠들지 못한 것인지

이르게 깨어난 것인지

알 길이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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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잠시 곁을 스쳤대서

같은 영원을 꿈꿨다곤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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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한 고개는 서로 다른 풍경을 담았고

돌아선 등짝에도 모두가 침묵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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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수의 톱니바퀴도

멈추지 않으면 한 번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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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 삐그덕거리면서도

멈출 줄 모르는 삶이라

이따금 거짓말 같은 위로를 만날 뿐

 

계절을 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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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싫다던 네가 멀게만 느껴졌어

너는 가끔 삐딱선을 타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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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유 같은 이유야 있었지만

그게 이유를 위한 이유처럼만 느껴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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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네가 창가에 턱을 괴며

슬며시 흘리던 그 한 마디가

나를 네 곁으로 당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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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감았던 눈 뜨면 오는 계절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이 계절의 아름다움이 치열하게만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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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어

어떻게 눈을 떠야, 네 시선으로 계절을 읽을 수 있을까

 

아임 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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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러더라?

괜찮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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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전히 낭만에 젖어 사는 일

언제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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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손을 쫙 펴 보였어

손금이 더 짙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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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있게 토했지

언제나 삼켜버렸던 그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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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쥐어 든 것들

괜찮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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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등 떠밀려서 사는 일

언제까지고

​

그 쥐어든 것들

결국에는 짊어진 것들 아니냐고

​

그래서 당신의 어깨는 무시하냐고

 

통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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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고 깨져도 내가 괜찮을 수 있는 건

통증으로 끝나버리는 게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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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야기는 결국

그렇게 시작된다

 

일용할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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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음에도 부족함이 없고

많음에도 과함이 없는

일용할 양식만을 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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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꾸역 삼켜낸 것들이 역겨워

목구멍에 손가락을 찔러 넣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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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렁그렁 맺히던 기도를

내내 기억하게 하소서

 

터널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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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끝에 이어질 길을

기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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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그런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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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가운데

옅은 오렌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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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한 고요함

그 가운데

가만히 잠기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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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그 자체가 주는

어둠과 집중이 좋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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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커녕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는

환한 출구는 급작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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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언가를 좋아해요, 라는 말은

그 너머의 것은 생각하지 않은다는 말이다

 

사람 냄새 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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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책을 읽는 이보다, 한 문장을 쉽게 놓지 못하는 사람이 좋다. 주변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보다도 절벽 끝에 선 그를 변호해줄 단 한 사람이 있는 이가 훨씬 근사하다.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보다도 몇 개의 힌트만을 던져 놓고서 침묵하는 이에게서 더 많은 것을 읽는다.

가끔은 어긋 채운 단추, 엉성한 옷차림의 그에게 더 잦은 눈길이 가는 것처럼 나는 조금은 허술하고 탈이 있는 사람이 좋다.

촌스러운 구석이 있어 적당히 색이 바래고 자연스러운 당신, 서둘러 걷다가도 조용히 변해가는 계절을 알아보는 당신과 함께 나란히 발을 맞춰 걷고 깊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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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보다 이 세상에는

나와 닮아 있는 누군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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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지금, 여기 내 곁에 없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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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은 희망적이면서도

때때로 비극적이다

 

벗겨진 양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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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피를 잡지 못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 위에 누워 있을 때 나는 꿈을 꾼다. 벗겨진 양말 끝을 올려 신지도 벗기지도 못한 채 나아가는 꿈.

어릴 적부터 그랬다. 멈추는 법이 없었다. 마음대로 벗겨져 뒤꿈치에 겨우 걸쳐진 양말이 주는 불쾌함에도 그저 걸었다. 일단은 도착해서 고쳐 신자는 식.

언제나 목적지가 중요했다. 그곳에 닿기까지 쏟아지는 땀이나 터진 상처 따위는 목적지에 닿기만 하면 사라질 것들이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랍장 안이 목 늘어난 양말들로 가득 했을 때 알았다. 나는 멈춰야 했다. 벗어버릴 것인가 고쳐 신을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늘어져 버려 다시는 신을 수 없는 감정이 늘어가기 전에.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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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봤자 나는 나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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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마다 휙휙 변해가던 장면들에

정신을 놓았어도

돌아보면 언제나 같은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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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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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질 건 달라져도

내가 나이면 그걸로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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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묵묵히 짚어주고 조곤조곤 말해주는 감정들에

그저 끄덕일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