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원 ‘나를 위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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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들>

p.15

저는 이 세상의 행복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요. 하나는 어른의 행복, 또 하나는 아이의 행복입니다. 아이들은 신나고 재밌고 맛있으면 행복합니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게임 하고 엄마 아빠랑 좋은 시간 보내면 행복하죠. 단순하게 이해하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어른들은 어떨까요.

어른들은 행복하려면 일단 고통이 없어야 합니다. 근심, 걱정, 불안 이런 게 없어야 한다는 거죠. 오늘도 먹고살기 위해서 긴 하루를 보내다 마침내 밤에 잠을 자기 위해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 어떠세요.

그럴 때 드는 안도감을 우리 어른들은 행복이라 부릅니다. 아이들이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서 세상을 헤맬 때 어른들은 그저 걱정, 불안, 고통이 없는 상태에 놓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거죠. 물론 그런 날이 며칠 안 돼서 문제지만요.

 

p.24

우선 저는, 제가 특히 좋아하지 않는 타인의 태도가 있는데 누가 나를 안다고 믿을 때, 혹은 그렇다고 말할 때 힘이 들거든요. 그건 제가 파악하기 힘든 복잡하고 특이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은 누구든 여러 가지 면을 갖고 있는 복잡다단한 존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런 믿음은 우선 틀릴 때가 많고요. 특히나 위험한 건, 사람이 누굴 안다고 믿으면 어떻게 될까요. 타인에 대해서 단정을 짓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이처럼 타인의 어떤 행위에 대해서, 심지어는 한 인물의 삶 전체에 대해서까지도 그저 문장 하나, 단어 하나로 뭉뚱그려버리는 세태가 만연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행위를 요약의 폭력이라고 부르는데요. 이런 태도가 특히나 폭력적인 이유는 수정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어,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하고 자기 판단을 수정할 수만 있어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지금과는 굉장히 다른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많은 경우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판단을 너무 쉽게 할뿐더러 한 번 내린 결론은 거의 바꾸지 않습니다. 법원만 해도 삼심제도라 해서 세 번의 기회를 주는데 우리 개개인은 타인에 대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 안에서 법정을 열면서도 한 번 판결 내리면 끝. 되돌리지 않죠.

사람은 변할 수 있는데. 설령 어렵더라도 그럴 가능성을 포기하면 안 되는데.

저는 그래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변화 가능성을 그렇게 쉽게 일축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인들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p.48

이유가 뭐가 됐든 남을 미워하고 원망한다는 건 우선 나 자신에게 타격을 입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거죠.

그 말은 바꿔 말하면 누굴 미워하지 않게 된다는 건 결국 나를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인데, 그래서 이 사람과 사람 간의 일이라는 것은 정말 간단한게 아닌 것 같아요. 누가 누굴 알고 이해한다는 건 어쩌면 평생이 걸릴 수도 있는 긴 여정이기 때문에.

 

p.51

요즘 유튜브 같은 곳 보면 두 시간짜리 영화를 10여분으로 요약해서 보여주는 영상들이 많습니다. 놀랍게도 그런 영상을 보고 자신이 한 편의 영화를 온전히 보았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더군요. 그뿐만 아니라 뉴스든 책이든 가능한 짧게, 너무 긴 시간 집중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요약 정리된 콘텐츠가 점점 더 각광을 받고 있죠. 이렇게 모든 것을 손쉽게 요약해서 받아들이는 풍토가 지속되면, 과연 같은 사람, 즉 타인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요약이라는 건요, 당장 받아들이기에 간편할지는 몰라도 필연적으로 오해와 단정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글에는 행간이 있고 맥락이라는 게 있는 건데 그걸 다 생략하고 핵심만 남긴다? 지금 문제집을 푸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300페이지짜리 책 한 권을 한두 개의 문장으로 압축하듯, 수십 년 사람의 인생 역시 한두 마디 말로 요약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저는 우리가 이미 그런 몰이해가 넘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런 행위들이 점점 더 만연하게 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국 어떻게 될까요. 인간은 타인에게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이해받지 못하고 느낄 때 큰 정신적 고통을 느낍니다.

때문에, 타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지금과 같은 한,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저는 그렇게 보는 거죠.

 

p.53

우리는 살아가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타인에 의해 규정당할 수밖에 없고 그건 내 의지와 노력으로 막을수도 없거니와, 그 내용을 내 마음대로 수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서로가 서로의 거울임을 인정한다면, 결국 내가 이해받고 싶은 대로 타인을 이해하는 수밖엔 다른 도리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이해의 세계라는 것은, 내가 부자가 되고 싶으면 내가 아닌 타인을 부자로 만들어주어야 하는 그런 희한한 구조의 세상인 거죠. 내가 바라는 걸 남에게 주어야 결국 그게 나에게도 돌아오는 방식. 그런 룰이 적용되는 세상. 이해의 월드. 이해되세요?

그러므로 내가 이해받고 싶은 만큼 타인도 이해하자. 왜, 그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윤리니까.

 

p.68

저도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을 못 받아줍니다. 누구한테 무례하거나 이상한 말을 듣는 일이 저에게는 일종의 사고와도 같기 때문에 이건 제가 단단해지고 말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체력 단련을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잘못은 잘못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거지, 외톨이가 되기 싫어서 나를 말로 상처 주는 사람들을 참고 살 수 는 없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그런 이유로 날 외롭게 하는 사람들을 주위에 두고 살면 과연 그게 외톨이가 아닌 걸까요? 저는 뭐든 대가는 치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자신이 소중하다면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서 혼자가 되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는 오히려 그런 것을 개의치 않는게 단단함인 것 같고, 세상은 그런 사람을 결코 외톨이로 놔두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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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5

이게 좀 슬픈 얘기인 게, 이 세상에 수많은 좋은 것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뭔가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오직 돈을 주고 사는 것밖에 없다는 건 서글픈 얘기거든요. 돈이라도 주고 살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갖고 싶고 정말 가치 있는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으로 하늘나라에 가 있는 친구를 불러서 만날 수도 없고, 돈으로 내 인정이나 평판을 살 수도 없죠. 사람이 살면서 바라는 건 참 많은데 그게 다 충족이 되진 않거든요. 그럼 그때마다 가슴에 생긴 구멍을 어떻게든 메워야 하는데 결국엔 돈이라는 거죠. 하다못해 문구점에 가서 예쁜 볼펜 한 자루라도 사서 손에 쥐어야 그 구멍이 조금이나마 메워지니까. 아니면 맛있는 거라도 먹든가.

저는 아직은 세상이 나를 필요로 했으면 좋겠고, 나도 좋아하는 일 한번 하면서 살아보길 바랐지만 그게 잘 안 되니까 아무리 카드를 할부로 긁어도 마음속 허기는 메워지지 않았습니다.

동그라미는 채우는 게 아니라 그저 안고 살면 되는건데. 동그라미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있는 건데. 그땐 그걸 잘 몰랐죠.

 

p.82

인간의 삶에는 노력을 아무리 해도 닿을 수 없는 소위 말하는 운이 좌우하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걸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심지어 운조차 내 노력의 소관으로 이해를 해버리면 결국 세상만사가 다 내 탓이 되어버립니다.

그것은 결코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아니죠. 그런 식이라면 모든 실패는 결국 노력이 부족해서 오는 것이고, 내가 집이나 직업이 없는 것도 오로지 나라는 개인이 게으르고 무능한 탓이라고 해석이 될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럼 우리가 사회적인 공정과 평등을 말할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모든 게 내 탓이고 다 각자 하기 나름인데 말이죠.

그래서, 사람이 언제나 노력한 만큼이 보상을 받는건 아니기 때문에 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너무 가혹하게 자신을 탓하는 일은 없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드려봤습니다.

인생은, 꼭 내가 선택한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삶의 변수로 작용하는 운과 우연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불필요한 자책을 피할 수 있다는 것. 물론 자책과 건강한 자기반성은 분명히 구분되어야겠죠.

무조건 내 잘못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씀을 드리는건 아니라는 겁니다.

 

p.183

세월이 흘러서 나는 그때보다 더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모른다. 누가 나를 힘들게 할 때, 상대의 행위를 몇 번이나 참는게 맞는 건지를. 두 번까지 참았다가 뭘 해도 해야 맞는 건지, 다섯 번은 참아야 하는 건지 모른다. 또 나는 내가 가진 어떤 꿈이 몇 살까지 실현 가능한 것인지, 그 뒤로는 영영 할 수 없는 것이 정말 맞는지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답은 내가 정하는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우리는 평생 세상에 어떤 답이 있어서 그걸 배우고 익히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믿어왔다. 그래서 답이 존재하지 않거나 답을 발견하지 못하는 문제들에 직면하면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오직 본인만이 답을 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그걸 스스로 정하고 깨우쳐가는 게 어쩌면 나 자신을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긴 기다림 끝에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 가기 위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것 하나다.

하여 이 책은 무엇이 정답인지를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작가로서의 내가 늘 그랬듯 나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줄 뿐이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독자들이 어렴풋한 힌트라도 얻을 수 있다면 만족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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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직면하고 고민했던 문제들이 꽤 많이 담겨있었다. 모두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속에 있고 그걸 확인하게되어 한결 마음이 놓였달까. 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분명 험난하고 상처투성이겠지만 찾아가볼까하는 용기가 생길 수 있게 도와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