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 ci comme ça

(스포주의) 일흔 살 넘어 최근 몇 년 동안, 잠은 강물처럼 탁해졌다. 잠의 깊이가 강처럼 변한 것이다. 얕은 잠은 탁한 계곡물이나 겨우 헤적거리는것 같고, 깊은 잠은 어두운 강 밑바닥으로 잠겨 들면서도 완전히 가라앉지 못한 채 깊고 무거운 진흙 같은 물속에 반쯤은 묻히고 반쯤은 떠 있었다. 바닥까지 가라앉으면 그건 곧 죽음이고 두 번 다시 이 깊디깊은 잠에서 떠오를 수 없으리라, 눈을 뜨면 매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눈을 떴는데도 의식이 아직 흙탕물 속이어서 이게 바로 죽음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있었다. 일흔이 되고 처음 한동안은 죽음이 주춤주춤 다가와 해가 갈수록 성가신 물건처럼 자꾸 들러붙는다 했더니만 최근 일이 년 사이에는 또 다른 나 자신이나 친한 친구처럼 내 몸속에 들어앉아 아예 일상이 ..

p.15 저는 이 세상의 행복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요. 하나는 어른의 행복, 또 하나는 아이의 행복입니다. 아이들은 신나고 재밌고 맛있으면 행복합니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게임 하고 엄마 아빠랑 좋은 시간 보내면 행복하죠. 단순하게 이해하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어른들은 어떨까요. 어른들은 행복하려면 일단 고통이 없어야 합니다. 근심, 걱정, 불안 이런 게 없어야 한다는 거죠. 오늘도 먹고살기 위해서 긴 하루를 보내다 마침내 밤에 잠을 자기 위해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 어떠세요. 그럴 때 드는 안도감을 우리 어른들은 행복이라 부릅니다. 아이들이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서 세상을 헤맬 때 어른들은 그저 걱정, 불안, 고통이 없는 상태에 놓이는 것만으로도 행복..

​5. 점잖은 사이 반한 사람이랑 밥을 먹을 때면 젓가락질을 태어나서 처음 하는 것만 같다. 음식을 집어서 입에 넣는 일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뭔가를 자꾸 흘리고 묻히느라 정신이 아찔해지고 그러다 보면 체하게 된다. 나를 긴장하게 만든 사람이랑은 되도록 밥 약속을 피하고 커피 약속을 잡아야 한다. 연초의 어느 날에도 커피 약속을 향해 빠르게 걷고 있었다. 걔를 만나러 가는 길에 어쩐지 마음이 불안했다. 새삼 너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전철역에 다다르자 저 멀리 그 애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윽•••.’‘ 하며 걔를 향해 걸었다. 가까워질수록 내 불안의 근거가 선명해졌다. 그 애를 보자마자 엄청 자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욕망이 나를 신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더없이 쓸..

착각 ​ 같은 곳에 점. 박고 서 있대서 당신과 나는 같은 여정에 있지 않다 ​ 새벽에 깨어 있다는 것만으로 잠들지 못한 것인지 이르게 깨어난 것인지 알 길이 없는 것처럼 ​ 우리가 잠시 곁을 스쳤대서 같은 영원을 꿈꿨다곤 할 수 없다 ​ 마주한 고개는 서로 다른 풍경을 담았고 돌아선 등짝에도 모두가 침묵했으니 ​ 서로 다른 수의 톱니바퀴도 멈추지 않으면 한 번은 만난다 ​ 당신과 나, 삐그덕거리면서도 멈출 줄 모르는 삶이라 이따금 거짓말 같은 위로를 만날 뿐 계절을 읽는 법 ​ 봄이 싫다던 네가 멀게만 느껴졌어 너는 가끔 삐딱선을 타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 늘 이유 같은 이유야 있었지만 그게 이유를 위한 이유처럼만 느껴졌거든 ​ 그런데 오늘 네가 창가에 턱을 괴며 슬며시 흘리던 그 한 마디가 나를 네 ..

전고운 「내일은 내일의 우아함이 천박함을 가려줄 테니」 - 이런 나의 생각이 문제다. 쉬운 것은 인정하지 않는 생각. 어려운 것만 진짜라고 여기는 생각. 결핍과 고통에서 빚어진 게 아닌 글들은 가치 없다고 여기는 생각. 이석원 「어느 에세이스트의 최후」 - 인생은 늘 이렇게 오락가락이다. 어떤 날엔 그 어떤 난리를 쳐도 단 한글자도 쓰지 못하겠다가, 어느 날엔 책 한 권 분량을 뚝딱 써냈다가, 언젠가는 죽도록 쓰고 싶었다가 또 어떤 날엔 죽을 만큼 쓰기 싫었다가. 이다혜 「쓰지 않은 글은 아직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다」 - 쓰지 않은 글은 쓴 글 보다 사랑하기는 쉽다. 쓰지 않은 글은 아직 아무 것도 망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랑 「오늘도 춤을 추며 입장합니다. 쓰기 지옥」 - '너에게는 과분하다 생각하는..

(스포주의) 유명한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인생 이야기로 독자를 매혹하기 시작하고, 그러다 아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돌아서며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책은 당신의 가슴을 사로잡고, 당신의 상상력을 장악하고, 당신의 예상을 박살 내고, 당신의 세계를 뒤흔들 것이다. 룰루 밀러는 첫 페이지부터 무언가를 쌓아나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사적인 철학이고, 한 남자의 이야기이며, 미국의 이야기다. 그것은 이 모든 것이지만, 또한 그보다 더 큰 것이고, 이 모든 일은 점진적으로 일어나서 마지막 몇 페이지에 이르러서는 충격적이게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그랬듯 룰루 밀러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유유히 흘러가다가 어느 순간 우리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든다. 이..

사람의 얼굴이 들어 있거나, 물체의 명확한 윤곽선이 보이거나, 강렬한 색이 있는 조각은 제자리를 찾기 쉬운데 희미한 하늘색 조각들은 어렵습니다. 그런 조각들을 쥐었을 때 문득 주인공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모두가 주인공이라 주인공이 50명쯤 되는 소설, 한 사람 한 사람은 미색밖에 띠지 않는다 해도 나란히 나란히 자리를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를요. 연재를 하는 동안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50명의 얼굴이 아는사람의 얼굴처럼 선명해졌습니다. 얼굴들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길거리에서 왔을 것도 같고 꿈에서 왔을 것도 같습니다. 세상이 무너져내리지 않도록 잡아매는 것은 무심히 스치는 사람들을 잇는 느슨하고 투명한 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만약 2..

표지에 대하여 정말 외로운 사람은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건너가지 못하고 못 속에 스스로를 유폐시킨다. 고독은 못의 바깥에서, 숨죽여 입을 벌리고 있다. P.40 다정 더하기 우울은 위로 상처를 준만큼 상처를 받았다고 하자 그래야 죄책감이 조금은 덜어지니까 수치를 서로 나누어가졌다고 하자 그래야 조금 더 구체적이니까 비겁함을 밀고 밀어서 신념이나 신앙이 될 때까지 뻔뻔해지자 그래야 우리는 어리석을 수 있으니까 그래야 우리는 우리만을 안타까워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 다시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P.41-42 잠기는 돌 물속으로 돌을 던져 파장을 보고 부피를 가늠했다 분주할 것 없는 아침엔 매일 앓느라 바빠 오늘은 쓸데없이 자를 샀다 얼마나 쓸데없는 마음이었는가 재어보려고 함부로 말하는 ..

다디단 우주적 친환경 사랑이야기 (스포주의) 한아 : 저탄소생활을 실천할 정도로 지구를 사랑하는, 무심해보이지만 다정한 여주 경민1 : 한아와 만난지 11년된 남자친구, 유성우를 보러 캐나다로 훌쩍 떠나고 그것도 모자라 경민2와 우주 자유이용권과 자신을 교환하여 우주끝까지 떠나버려 결국 자신을 잃고 만 불쌍한 사람 경민2 : 사랑을 위해 2만 광년을 날라온 사랑꾼 외계인 P.36-37 사람들은 왜 너 자신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느냐고 묻는다. 끝내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건전한 절대 명제,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역사상 가장 오래 되풀이된 거짓말 중 하나일 거라고 주영은 생각했다. 세계를 만들 수 없는 사..

(스포주의) 잠들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독특한 마을, 그곳에 들어온 잠든 손님들에게 가장인기 있는곳은, 온갖 꿈을 한데 모아 판매하는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이다. 몰디브에서 3박 4일 휴가 보내는 꿈,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는 꿈, 하늘을 훨훨 나는 꿈 등 층층마다 특별한 장르의 꿈들을 구비하고 있다. 이곳에는 긴 잠을 자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짧은 낮잠을 자는 사람들과 동물들로 매일매일 대성황을 이룬다. 요즘 핫한 베스트셀러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어 보았다. 꿈에 대한 신선한 시각과 에피소드들을 풀어가는 방식이 짜임새있어 후딱 읽어버렸다. 보기드문 판타지적인 세계관이 흥미로왔고 좋아하는 감정, 예지몽, 트라우마, 죽은이가 나오는 꿈 등 굵직한 주제를 글에 잘 녹여내어 때론 공감하고 때론 감탄하며 ..